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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립 전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남북 대치의 배경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다

by 토론토 2025. 6. 17.

비오는 날의 거리...사진

 

안녕하세요. 단상입니다.  대한민국이 성립되기 이전 한반도는 일제의 강압적 식민 통치를 거쳐 해방을 맞이했지만 곧바로 분단과 전쟁의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의 상황과 해방 이후 남북이 어떻게 대치하게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며, 현재 대한민국이 태어나기까지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거쳤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한반도, 제국주의와 이념 대립의 경계에 서다

20세기 초반, 한반도는 제국주의의 흐름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었고, 그로부터 35년간 일제강점기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외세 지배가 아닌 민족 말살 정책과 강제 동원의 시기로, 한민족의 문화, 언어, 인권이 심각하게 억압받았다. 일본은 조선인을 '황국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과 종교, 언론을 통제했고, 1930년대 이후에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다.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이어졌으나, 강압적인 통치와 세계정세의 한계 속에 독립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은 즉시 독립과 통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방 직후의 한반도는 이념과 외세에 의해 갈라졌고, 단일 민족이었던 조선은 곧 두 개의 정치 체제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민중의 뜻과는 무관하게 외세 주도의 구조 속에서 결정된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남북의 분단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어갔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민족의 저항

1910년 일본은 한일합방조약을 통해 조선을 공식적으로 병합했고,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총독부 체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통치는 군사적·행정적으로 철저히 억압적이었다. 조선총독은 일본 군인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독점했다. 조선인은 정치 참여는커녕 표현과 결사의 자유조차 누릴 수 없었고, 3·1 운동 같은 저항운동은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1919년 3·1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지만, 이후 일본은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며 겉으로는 온건해졌으나, 실상은 더욱 치밀한 동화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전쟁 체제에 돌입했고, 이에 따라 조선인에 대한 강제 징병과 징용, 정신대 동원 등 인권 유린이 극에 달했다. 조선어 교육은 폐지되고 신사참배가 강요되었으며, 일본어 사용이 생활 전반에 적용되었다. 이 시기의 독립운동은 만주, 상하이, 연해주 등지에서 계속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조선 내부에서는 감시와 고문, 사상 탄압으로 인해 체계적인 저항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이 끊임없이 독립의 불씨를 이어갔다. 해방의 순간은 결국 일본의 패망에 의해 찾아왔지만, 그 순간에도 조선은 스스로의 운명을 온전히 선택할 수 없었다.

해방 이후 분단으로 향한 길목에서

1945년 8월, 조선은 해방을 맞았지만 곧바로 미국과 소련의 군정 아래 들어가게 된다. 이는 한반도가 냉전의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일본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통치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군정기'로 불리며, 남북 각각 외세에 의존한 정치 질서가 자리잡는 시기였다. 양 진영은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이념을 기반으로 각각 단독정부 수립을 준비하였고, 1948년에는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 북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분단이 현실이 되었다.

이 시기의 남북 관계는 정치적 긴장이 극심한 상태로, 서로를 정통성 없는 존재로 규정했다. 특히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이념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산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전쟁은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일단락되었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화되었고, 남북 대치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출범은 단순한 정부 수립을 넘어,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려는 역사적 결단의 산물이었으며, 동시에 냉전 질서와 국제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탄생한 결과였다.